있지, 있지. 인간들은 왜 본인이 직접 이별하는 것도 아닌데 남의 이별에 눈물을 흘리는 거야?
그러게. 왜일까. 그건 있지. 인간이 가지는 ‘본능’이란게 아닐까.
본능. 그게 뭐야?
그건 말이지――.
본능.
그 한 단어가 아이의 가슴 속에서 공명을 일으켰다. 그 감정이 마음에 파장을 만들었다. 노을이 쏟아져 내려오는 넓은 공터에서. 파도 마냥 가만히 쓸려오는 감정은. 그동안의 쓸쓸함과 고됨을 전부 쓸어가는 안도감이다. 천진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다.
하늘에서 따스하게 내려오는 저 빛이. 저들에게 돌아갈 길이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이제는,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이었다. 한 사람의 도력이라 하기엔 거대한 것들이. 그 장면을 만들어 눈 앞에 펼쳐낸다.
무언가. 말을 해줘야 하는데. 수고 많았어. 고생 많았어. 만나서 다행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네. 그런데, 목이 메서 그런 말조차 나오지 않는 걸 어찌할까. 아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다.
긴 시간. 자신의 사랑하는 동생을 찾기 위해 이승을 헤맨 사람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긴 시간. 자신의 사랑하는 누나를 기다리며 한없이 이승에 눌러앉았을 소년의 모습이 그 위에 덧그려졌다.
고목 위에서 울던 아이가. 한달음에 사랑하는 사람의 품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드는 것을 보았다. 행복하다는 듯 웃는 표정을 보았다. 그 사이로 떨어져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그 긴 이야기의 끝이. 지금 이 순간이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이라면. 무언가 감상이 나와야 할 텐데. 감탄사라도 나와야 할 텐데. 고맙다는 말에 대답해야 하는데. 아이는 아무 말도 없이, 그 장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점차점차. 도력과 함께 사라져가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는 다시금.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뜬다. 여전히 본능이라는 것은 괴로울 정도로 마음을 어지럽힌다.
본능이라는 것을 말해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에 반응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지금 이 상황을 봐서일까. 아니면. 그저 그것은. 이야기를 적어내려 전해야 하는 자의 숙명인 것일까. 이런 만남과 이별의 이야기를 끝없이 기록해야 하는 자의 숙명인 걸까.
아이는, 아무 말 없이 품에서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적지 못한 빈 노트에 단 한 줄. 그 말을 적기 위해서라도. 떨어져 내리려는 눈물을 붙잡아 들며 펜을 들었다.
[이것은, 긴 세월의 이별. 잠깐의 만남과, 다시 시작되는 이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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