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영] 작은 아이와 작은 이야기
설화학당의 이야기, 『뱀과 쥐』의 엔딩부 내용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이야기를 모르는 분들은 열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영물이 아닌, 그저 동물들은 사람의 이야기를 모른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아이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조심스레 대해야 한다고. 모두와 같이 살아가려면 무리해서 아이들을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아이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른다며 눈을 돌려버리면?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닌가. 동물과 대화할 수 있는 도사라면. 단편적인 이야기라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적어도.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에게 상냥했듯, 모든 동물에게도 최소한의 상냥함을 베풀어준. 자신의 큰 그림자가 되어준 여성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그들을 이해하려 애쓴 뒷모습을 기억하며. 자신도 그렇게 해주기로 한 그때를 기억하며.
원체 몸이 약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런 것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고작’이라는 단어가 언젠가 바뀌어서. 큰 힘으로 변화한다면. 분명 그것이 자신이 그리던 제일 이상적인 도사의 모습일 것이라고. 아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노력하려 했던 것인데.
‘…… 우리, 대화로 어떻게 못 했던 걸까?’
조그마한 뱀을 바라보며. 비단처럼 하얀빛을 발하는, 불쌍한 아이를 바라보며 자신의 행동을 반추했다. 분명히 아이는 그 뜻을 기억하고. 거대한 아이와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무언가, 해결할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제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다. 그게, 조금은 아이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당시에. 그렇게 큰 뱀을 보고 느껴버린 두려움은. 인간의 공포심은 분명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이겨내지 못한 것이 분했다. 아이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많은 도사였으니까. 아직도 걸어가야 할 길이 먼 도사니까. 아니, 아직은 스스로 도사라 부르기 부끄러운 존재이니. 그래서, 조금은 분했다.
“…… 선생님. 그 아이, 제가 데려가고 싶어요.”
답지 않은, 조용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나왔다. 스스로도 듣기 놀라울 정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만큼 진심이었다. 동물의 행동 방식은 사람과는 다르다. 동물이 이해하는 양상은 사람과 당연하게도 다르다. 그것을 아이는 잘 알고 있었다.
조심하며 손을 내밀면, 작은 아이는 곧잘 손으로 올라왔다. 세상의 빛을 반사하는 티끌 없는 흰색이 매력인 아이였다. 비단같이 빛나는 비늘에 무심코 눈을 빼앗기고 마는, 그런 아이였다.
문득, 작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붉은 눈. 한동안 그 눈을 바라보고, 가볍게 손을 뻗으면 금세 다른 손으로 몸을 옮겨오는 아이였다.
“있지. 내 말에. 대답 해주지… 않을래?”
‘날 데려가는 건, 너인 거야?’
“…… 응. 아까도 사실 계속 대화하고 싶었거든. 무작정 서로 상처입히지 않고. 대화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작은 아이를 올려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런 아이를 달래려는 듯 그 위에서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는 작고 하얀. 이제는 이질적인 느낌마저 들어버리는 그 작은 아이는. 손가락 하나를 꼬리로 옭아 잡고는 천천히 그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 이쪽의 오해도 있었으니까. 다시는 이곳에 발조차 들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도. 이런 나를 데려가서 옆에 두는구나.’
“어쩔 수 없었잖아. 속상한 건 분명 있을 거고. 동물들은 인간과 대화로 해결하는 게 안되니까. 그래서…….”
‘그래서 도사가 된 거지?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려고 하는 네가 보이긴 했어. 물론 그때는 나도 복수심에 그만 그런 짓을 했지만.’
“………… 미안해. 내가 조금만. 더. 일찍 그 목소리를 들었으면 분명…….”
좋은 해결책이 있었을텐데. 너도 이렇게 그저 분노에만 차서 제지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분명 그랬다면. 너를 이 학교의 영물 학생으로 보는 날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 뒷말을 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아 아이가 입술만을 다물고 있으면 작은 아이는 또 뻐끔. 작게 입을 열어주었다.
‘네 잘못은 없어. 그리고. 과거의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도 선뜻 손을 내밀어준 네가 있으니까.’
“…… 에헤헤. 조금은, 이렇게. 널 이해할 수 있었다면야.”
‘너에겐 재능이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앞으로, 난 부끄럼 없이, 두려움 없이 너의 벗으로 살아갈 거야. 가만 보니 공격으로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으니까. 너의 옆에 있는 동안엔 너를 위해서 힘을 쓰겠어.’
“그, 소질이 없기는 하지만, 물론.”
‘그래서? 내 이름은 어떻게 지어 줄 거야? 나의 벗.’
“으음, 그러니까 이름……. 흰색의 몸이 예쁘니까. 백, 백단이?”
‘이름은 뭐가 되었던. 처음 가지는 이름이니까. 기쁘게 받아들일게.’
기쁘다는 의미인지, 손가락 하나를 옭아매던 몸을 천천히 팔에 감고는 안정을 취하는 듯 눈을 감는 작은 아이를 보며. 아이 역시 조그맣게 웃었다. 부드럽게, 자신의 벗을 바라보며 웃었다.
이걸로, 조금은. 그들을 이해하고. 그녀처럼 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게 나아갈 수 있는 한발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성장했겠지.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성장하는 길에는. 이 작은 아이가. 처음 맺는 벗인 백단이가 함께일 테니까. 이미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상향에 가까워진 느낌이 드니까. 저절로 늘어졌던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그래, 이게.
이게, 유 영이라는 아이가. 도사가 되려고 결심한. 이유였으니까.